2022년 6월 26일 일요일

소스코드 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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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24일 금요일

슈뢰딩거의 리모컨.txt

 양자역학은 어려운 개념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줍니다.

고전물리학자들도 이해를 못했다고 하죠.

고양이 사고 실험으로도 유명한데 쉽게 말해

완전 밀폐된 공간에서 1시간 후에 50퍼센트의 확률로 작동하는 독극물 트랩이 있다면 1시간 후 공간을 개방한 후 고양이는 어떻게 되느냐라는 겁니다.

양자역학의 해석에 따르면 '고양이는 확인 전까지 삶과 죽음 모두 중첩된 상태인데 확인 후에야 삶인지 죽음인지 결정된다'라는 확률론에 기반한 이상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슈뢰딩거가 주장한 이 실험은 슈뢰딩거가 양자역학을 까기 위해 만들어져 오히려 양자역학을 더 유명하게 만들었죠.

 

 

근데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이 개념을 이미 겪고 있습니다.

TV를 켠채 눈을 감고 누워있는 부모님이 있습니다.

우리가 리모컨을 잡고 채널을 바꾸기 전까지 부모님은 '잠들어있다', 'TV를 보고있다' 상태가 중첩되어 있지만

우리가 채널을 바꾼 후에야 부모님이 잠이 든건지 'TV본다~'며 한마디 할지 확인할 수 있죠.

 

즉, 여기서 우리는 슈뢰딩거의 부모님이 눈감고 누워서 TV보는 습관이 없다는 결론을 낼 수 있습니다.

일본 육군의 뿌리 조슈 번

 일본 육군의 뿌리는 옛 조슈번, 현재 야마구치현이고

일본 해군의 뿌리는 옛 사쓰마번, 현재 가고시마현입니다.

일본 근현대사를 공부하려면 사쓰마, 조슈 이 두 지역은 꼭 알아둬야합니다.

 

특히 옛 조슈번, 현재 야마구치현 같은 경우에는 현재까지도 일본에 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지역입니다.

당장 일본 역대 총리 62명 중에 8명이 이 동네 출신인데, 야마구치현은 현재 인구 150만명도 안되는 지역입니다.

2등인 도쿄도 출신 총리가 5명인 것이랑 비교하면 엄청나죠.

재임기간으로 따지면 더 비중이 큰데

일본에 총리가 생긴 1885년부터 135년 동안 야마구치현 출신 총리가 해먹은 기간이 약 42년 정도 됩니다. 

즉 근대 일본의 3분의 1은 야마구치현 출신들이 다스렸단 이야기입니다.

면면들도 화려합니다.

초대 총리부터 야마구치현 출신인 이토 히로부미구요.

역대 일본 총리 최다 재임기간 기록 1, 2, 3등이 다 야마구치현 출신입니다.

(1등 아베 신조, 2등 가쓰라 타로, 3등 사토 에이사쿠)

 

이렇게 된 이유는 역시 메이지 유신 시절 조슈번이 육군을 차지해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까닭도 있고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정계의 흐름이 조슈 번의 영향력이 강해지게 바뀌어서입니다.

일단 메이지 유신 당시 일본의 무력 집단은 사쓰마와 조슈 파벌이 있었고

그 외에 문관파라 할 수 있는 집단들이 있었는데 사쓰마 출신 오쿠보 도시미치가 대표적이죠.

근데 사쓰마 파벌의 우두머리인 사이고 다카모리가 고향에서 반란을 일으키다 죽어서 사쓰마 파벌의 영향력이 줄은 사이에

조슈 번 출신인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자연스럽게 일본군의 꼭대기를 먹게 되고

문관파인 오쿠보 도시미치는 조슈에서는 비주류였던 온건파 이토 히로부미를 후계자로 낙점해서 

문관파과 군부 모두 조슈 번 출신인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주무르게 되는 거죠.

 

그중에 이토 히로부미는 돈이나 파벌 만들기에는 별 관심이 없었으나

(대신 여자 관계가 더러워서 당대에도 이미지는 별로였는데 최근에는 더욱 별로가 됨)

조슈파이자 군부의 수장인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돈과 파벌 만들기 모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라서

육군에 부지런히 자기 파벌을 박아놓고, 총리를 하면서 정계에도 부지런히 자기 파벌을 박아넣으며

일본 군부와 정계 모두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원로로 행세합니다. 

사실 일본 군국주의의 뿌리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죠.

그리고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후예들이 일본 육군을 먹고, 이후 정계도 진출하는데

데라우치 마사타케, 하세가와 요시미치, 우가키 가즈시게(조슈 출신은 아님) 등입니다.

한국 근현대사를 아는 분들이라면 익숙한 이름일텐데 조선 총독부 총독들입니다.

일본 육군 대장출신들이 조선총독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가키가 군축을 시도하다가 도리어 육군 파벌의 반발에 부딪혀 총리에 오르는데 실패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잃고, 나중에는 오히려 조슈벌 반대파들이 육군을 먹으면서 몰락합니다. 

근데 이 조슈 파벌을 밀어내고 육군을 먹은 애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차라리 조슈 파벌은 돌아가는 머리라도 있었지 얘들은 능력은 없는데 더 전쟁광들이라서......

당장 우가키 가즈시게만 하더라도 만주와 내몽골은 일본이 먹어야하지만

중국 본토와 싸우는 중일전쟁은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했으나

그 반대편에서 열심히 중일전쟁의 불씨에 기름을 붓던게 도조 히데키였고

도조 히데키는 그 멍청한 자기 측근들과 태평양전쟁까지 일으키면서 일본 제국을 몰락시키죠.

엔카와 트로트의 관계에 대해서

 제가 마침 엔카와 트로트를 다룬 책이 있어서 

그 책에 나온 내용을 한번 정리하겠습니다. 

강헌이 쓴 '전복과 반전의 순간'입니다.



1. 일단 엔카에 대해서 정의해야하는데, 엔카는 일본의 음악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전통음악은 아닙니다. 

서양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일본의 근대 음악입니다. 

그리고 최초의 엔카는 우리 식으로 쉽게 표현하면 운동권의 민중가요였습니다.

근대의 자유민권론자들이 민중계몽을 위해 만든 것이 엔카의 시초였는데

당연히 국가의 철퇴를 두들겨 맞고, 사랑 노래를 하는 유행가로 바뀐 겁니다.

우리가 아는 엔카의 이미지는 이 때부터입니다. 


2. 엔카의 특징은 크게 2가지를 꼽으면 '요나누키 단음계'와 '2박자 기반의 음악'입니다.

요나누키 음계는 일본의 5음계 방식인데 '도, 레, 미, 솔, 라'을 사용합니다.

근데 이 5음계는 7음계를 쓰는 서양을 제외한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됩니다.

우리나라 민요도 5음계를 쓰고, 현대 대중음악의 중요한 뿌리 중 하나인 흑인음악 블루스도 5음계입니다.

근데, 이 요나누키 장음계를 단조로 바꾸면 '라, 시, 도, 미, 파'가 되는데

이것이 흔히 엔카에서 쓰는 요나누키 단음계가 됩니다.

이걸 쓰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뽕끼'가 확 살아납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2박자 기반의 음악을 선호했습니다.

즉, 1번과 다시 연계하면 '엔카=요나누키 단음계와 2박자를 기반으로 하는 일본의 근대 음악'입니다. 



3. 그러면 한국 전통음악의 특징을 살펴봐야할텐데

한국 역시 5음계를 사용하는데, 단조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계면조 같은 경우에는

'라, 도, 레, 미, 솔'을 사용합니다. 다시 말해 요나누키 단음계와 묘하게 음이 다릅니다.

그리고 한국은 전통적으로 3박자 기반의 음악을 선호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최초로 나온 트로트는 거의 3박자 기반이었습니다.



1928년에 나온 '황성옛터'는 잘 들어보면 3박자 입니다. 쿵작작 쿵작작이죠.

근데 음계는 요나누키 단음계를 사용해서 만들었습니다.



근데 1935년에 나온 '목포의 눈물' 같은 경우에는 같은 요나누키 단음계를 쓰지만 2박자 기반의 음악이죠.


잘 들어보면 우리가 흔히 트로트 하면 쓰는 쿵짝 쿵짝 쿵짜작 쿵짝 박자입니다. 

그리고 '목포의 눈물' 뒤에 나오는 거의 대부분의 트로트는

여러분이 잘 아는 쿵짝 쿵짝 쿵짜작 쿵짝의 2박자 기반입니다. 


그렇다면, 한국 전통적인 음계를 사용해도 트로트나 엔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실텐데

한국 스타일의 단조 5음계를 사용한 음악이 있습니다.



1974년에 발매된 '미인'인데, 같은 단조 5음계를 사용했지만

이건 요나누키 단음계(라, 시, 도, 미, 파)가 아니라 국악 계면조의 '라, 도, 레, 미, 솔'을 썼습니다. 

상당히 비슷합니다. 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 들죠.


하나 더 가져오겠습니다.



1934년에 만들어진 '그리운 강남'이란 곡인데, 역시 '라, 도, 레, 미, 솔'을 썼습니다.

잘 들어보면 같은 단조 5음계라서 트로트와 얼핏 비슷하지만, 국악의 느낌도 나죠.




강헌의 결론은 트로트는 일본 엔카의 영향을 받은게 맞다는 겁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탄생했지만, 이미 한국 사람들의 정서에 깊이 자리 잡았고

특이하게도 한국 사람들이 더 소화를 잘하는 장르가 되었다. 입니다. 

망해가는 서로마제국의 장군 스틸리코의 눈물나는 일대기

 외부적으로는 게르만족의 대거 남하를 겪고 내부적으로는 망해가던 로마 제국을 어떻게든 호흡기 붙여 살려내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395년 사망.


로마가 서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으로 갈라지고 테오도시우스가 죽어가며 10살짜리 서로마 황제 호노리우스를 스틸리코 장군에게 맡기면서 사실상 서로마의 운명이 스틸리코에게 달림.


그리고 이어지는 눈물나는 스틸리코의 일대기.


395년 고트족의 알라리크가 거병하여 동로마 지역의 그리스를 공격. 테오도시우스의 동로마 정예군을 가졌던 스틸리코가 그리스로 와서 방어. 그와중에 그 정예군은 원래의 동로마로 귀환. 시작부터 정예군이 사라짐.


397년 알라리크가 또 그리스를 침공. 스틸리코가 또 막음. 근데 이후 동로마가 알라리크의 협박으로 군사적 요충지 일리리쿰 사령관으로 알라리크를 임명함. 근데 일리리쿰은 서로마땅이란 기막힌 상황. 

그리고 이와중에 로마의 식량 공급지 북아프리카에서 반란이 일어남. 그래도 조기 진압에 성공


401년.  반달족 등의 이민족이 북이탈리아를 침공. 스틸리코가 막으러 감. 근데 이 모든 배후에는 또 알라리크가 있었고, 스틸리코가 없는 사이 일리리쿰에서 착실하게 힘을 키운 알라리크가 또 이탈리아를 침공. 


402년. 스틸리코가 급하게 이탈리아 바깥에 있던 병력을 싹 긁어모아 호노리우스 황제를 구출하고 알라리크를 이김.


403년. 또 알라리크와 싸워 이기지만 알라리크와 휴전협정을 맺고 돌려보냄. 기껏 고생했더니 다 이겨놓고 휴전협정 맺었다고 로마에서 비난여론이 생김.


405년. 고트족의 라다가이수스가 이탈리아를 침공. 이탈리아를 지키기 위해 프랑스, 영국 지역을 포기하고 그 지역의 병사들까지 다 끌어모았음에도 군사가 모자랐던 스틸리코는 노예까지 끌어모아 겨우 이김.

그러나 결국 이탈리아를 지키기 위해 포기한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스틸리코에 대한 로마 여론은 더 나빠지고, 멍청이로 유명한 호노리우스 황제도 스틸리코를 견제하기 시작함.


408년. 동로마 황제가 죽자, 서로마 황제 호노리우스가 동로마에 영향력을 행세할 생각을 함. 이 때 알라리크가 동맹을 요청하며 금을 요구하자 현실적으로 게르만족을 막을 수단이 필요했던 스틸리코가 제안을 받아들이고, 로마 여론은 스틸리코를 야만족과 손잡았다고 비난.

그와중에 호노리우스 황제가 스틸리코가 자기 아들을 황제로 만들러고 한다고 의심해서 결국 스틸리코파를 숙청하고 본인도 처형당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