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19일 일요일

퀸 후기

퀸 내한 공연에 대해 저 할배들 다시 왔네. 근데 이번이 마지막일수도 있겠구나. 
근데 4명중에 2명밖에 안남았는데 갈 필요가 있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갔다온 분들 반응들이 너무 좋아서 내심 갈등을 하다가 그냥 가기로 했습니다.
근데 고등학생 때 나름 팝 좀 들으셨던 어머니가 내심 가고 싶지만 월요일 출근 때문에 아쉬워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어머니께 슬쩍 한번 찔러보았더니 어머니가 급 결정을 하고 따라나오셨습니다.
체력과 출근 걱정이 되지만, 그래도 날이면 날마다 있는 기회가 아니니까요.
이렇게 모자의 급 서울나들이가 오후 2시 10분에 결정되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서울에 도착하니까 4시 10분이었고, 공연장인 고척돔에 도착하니까 5시가 넘었습니다.
어머니는 저 없이는 서울은 커녕, 저희 동네 바깥도 헤메는 절망적인 길치셔서
지하철을 타고 고척돔까지 가는 내내 제 뒤만 따라서 오셨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1달 전에 U2 내한공연 때문에 고척돔에 와봤기 때문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공연장에 도착하기 전에 가장 걱정했던 것은 표를 예매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약에 현장표 구매가 불가능하면 어떻게 하느냐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칫하면 2시간 30분을 넘게 와서, 아무것도 못한채로 2시간 30분을 돌아갈 수도 있으니까요.
어머니께 농담삼아 '표 없으면 그냥 합정역 5번 출구 구경이라도 하고 가죠.'라고 하긴 했지만
속으로 계속 신경쓰이긴 했습니다.
다행히도 스탠딩 2자리가 남아서 구매하긴 했지만, 어머니 체력이 좀 걱정이 되긴 했습니다.
신입들이 한달을 못버티고 다 그만둔다는 고된 노동강도의 회사에 10년넘게 근무하고 계실 정도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이가 드시니까 체력도 떨어지셨는데, 2시간 넘게 서있어야하니까요.
근데 이미 물은 엎어진 노릇이고, 그때 가서 생각해야지 하며 공연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머니는 음악을 참 좋아하시는 분입니다.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그 시절 음악 좀 들었다는 분들이 그랬듯 '팝부심'도 가지고 계셔서
한국음악 안듣고 팝 듣고 다니셨다고 하셨으니까요.
당연히 퀸 노래도 좋아하시고,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가 개봉했을 때도 저와 같이 보러 가셨죠.
그렇지만 이런 공연은 쉽게 올 수가 없으셨던 분이죠.
4년전에 저희 동네에 이승환 공연 있을 때 저와 같이 보러갔던게 가장 최근의 공연관람이셨는데
그것도 크지 않은 실내 공연장에서 한거라 이런 대형 콘서트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공연 시작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렇게 서서 큰 공연본게 언제냐고 여쭤보니
30년 전에 조용필 공연 봤을 때가 마지막이지 하고 대답하시더군요.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외국 뮤지션 공연은 오늘이 처음이신거죠.
체력 걱정은 하시면서도 내심 신남과 긴장, 설렘같은걸 숨기지는 못하시더군요.


공연이 시작되고, 아담 램버트, 브라이언 메이, 로저 테일러가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무대 연출이나 여러 모습은 유튜브 가보면 다 있기 때문에 굳이 여기서 다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제가 콘서트를 많이 가보지는 않았지만 손꼽힐 정도로 좋았습니다. 음악이나 무대 연출, 시각효과 전부 말이죠.
퀸 할배들은 체력도 부담될텐데 2시간 동안 훌륭하게 연주를 했고
아담 램버트는 왜 할배들이 계속 같이 다니는지를 아주 잘 보여줬습니다.
프레디 머큐리 같은 포지션을 소화하지만, 프레디 머큐리 짝퉁은 아니어야하는 그 어려운 역할을 아주 잘 수행했습니다.
덤으로 한마디 더하자면 젊은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



전 공연 보는 내내, 키 때문에 어떻게든 보이는 각도를 찾으려고 이리저리 위치를 옮기시는 어머니도 계속 어디있나 확인했습니다.
위에 언급했듯이, 어머니는 여기서 길 잃으면 집에 못돌아가시는 분이라서요.


근처에 수많은 젊은 사람들이 환호하면서 뛰고, 손 흔들고, 즐기는 모습 사이에서
어머니는 얌전하게 박수 치면서 공연을 보고 계셨지만, 어머니 나름대로는 신나게 즐기시는 방법이었을 겁니다.
어머니는 음악도 좋아하시지만, 어릴 때는 노는 것도 참 좋아하셨다고 하는데
그 일화는 제가 많이 듣긴 했지만 여기 설명하기엔 길고
그냥 80년대 후반 대구의 유명 디스코텍이나 롤러장, 나이트 문화에 대해 조예가 깊으셨다. 정도만 하겠습니다.
그렇게 흥이 많으신 분이 박수만 치시면서 공연을 보셨던건 아마 이런 곳에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그만큼 어머니의 젊은 시절과 현재가 멀리 떨어져있고, 
그 긴 시간 동안 어머니의 인생에는 이런 종류의 즐거움과 이별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할겁니다.
30년을 지켜본 제가 가장 잘 알죠.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퀸 내한 공연을 보면서도 계속 어머니를 보게 되더군요.
전 20대 때부터 제가 좋아하던 뮤지션의 내한 공연을 돈과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없을 때가 더 많았지만)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에겐 내한 공연이란 것은 그냥 본인 삶과는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젊을 때는 본인이 좋아하던 뮤지션들이 한국에 올 일이 없었고
더 나이가 들고서는 본인의 삶이 바빠서 신경조차 쓸 수 없었고.
거기에다 동네 밖 길도 못찾는 분께서 서울 구경은 엄두도 안나는 일입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흰머리가 지긋한 나이에서야 퀸의 내한 공연을 '목격'하셨다고 하는게 더 좋을까요.
그리고 저는 그런 어머니를 목격한 것이고.


뭐 나중에 공연이 끝나고 여쭤보니 어머니는 그냥 재미있었다. 잘 봤다. 신났다. 
딱 이정도의 반응 정도만 보여주셨는데
제 맘대로 별의 별 의미를 부여해서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제 돈 써서 어머니 꼬셔서 같이 갔는데 뭔가 더 감동스러운 걸 기대한 제 입장에서는 좀 심심한 반응이긴 하셨습니다.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곡인 I want to break free 나올 때 가장 신나하시더만 ㅎㅎㅎㅎ



공연이 끝나고 다시 지하철타고, 버스타고 집에 도착해보니 밤 11시였습니다.
집에 돌아오시면서 내일 바깥에서 근무하는데 체력 딸릴 거 같다고 하시면서도
그래도 갑작스러운 서울나들이가 재미있으셨나 봅니다.
그렇지만 공연보러 간다고 저녁도 제대로 못먹었는데 집에 도착해서 단팥죽 같이 먹고 
몸이 역시 고되셨는지 어머니는 잠드셨습니다.



제가 어머니께 같이 가자고 할 때 한 멘트가, 저 할아버지들 다음번 공연을 장담 못한다. 이번이 마지막 공연일수 있다였는데
생각해보니까, 어머니도 앞으로 이런 기회가 자주 있으실 거 같지가 않네요.
어머니 젊을 때 좋아했던 뮤지션들이 이제 은퇴했거나, 곧 은퇴거나, 아니면 죽었거나 셋 중 하나라서......
그리고 어머니도 연세가 드시니까 정말 이렇게 다니는게 마냥 가능하긴 힘들고.


다음번에 소중한 기회가 있으면 또 가야겠습니다.